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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얘기하자 - 이노우에 토시유키 (1)
    WEB아니메스타일 2014. 1. 30. 18:32

    animator interview

    이노우에 토시유키 (1)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데뷔 당시의 『GU-GU간모』에서 업계의 주목을 끈 이래 『AKIRA』,『MEMORIES』,『GHOST IN THE SHELL』,『인랑』,『BLOOD THE LAST VAMPIRE』,『천년여우』등, 계속해서 화제작에 참가하여 훌륭한 작업을 남겨왔다. 그 작화의 높은 퀄리티, 작업의 성실함으로 「퍼펙트한 애니메이터」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캐릭터 디자이너나 작화감독이 되는 것보다도, 한 명의 원화맨으로서 「움직임」을 추구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는, 좀 더 인간의 동작을 충실하게 재현한 리얼한 연기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그의 아니메에 대한 애정과 조예는 무척 깊고, 후진을 위한 지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animator interview」 제 2회에서는, 그런 그의 발자취와 작화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들어보도록 하자.


    2000년 12월 5일

    취재장소/도쿄・스튜디오 유

    취재/오구로 유이치로

    구성/오가와 비이, 오구로 유이치로



    PROFILE


    이노우에 토시유키 (Inoue Toshiyuki)

    1961년생. 오사카부 출신. 애니메이터. 전문학교에서 스튜디오 쥬니오를 넘어, 현재 프리. 『GU-GU간모』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그 후, 『AKIRA』,『마녀배달부 키키』,『MEMORIES』,『GHOST IN THE SEHLL』등의 작품에 참가. 작년 화제가 된 『인랑』에서는 부작화감독을 담당했다. 오시이 마모루에게 「연출가 불필요」「퍼펙트한 애니메이터」로 불리는 실력자이다. 현재는, 나카무라 타카시 감독의 신작 극장 작품에 참가중.

    현재, Production I.G에서 젊은 애니메이터를 지도하는 「이노우에죽」을 주최. 그 강의의 일부는 Production I.G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주소는 이하.

    http://www.production-ig.co.jp/





    오구로 옛날 얘기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맨 처음 이노우에 토시유키씨가 애니메이터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노우에 『미래소년 코난』을 본 거지.[각주:1]


    오구로 그렇군요.


    이노우에 그 전까지도, 『루팡 3세』나 『하이디』나 『도근성 개구리』를 보고,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단순히 TV에서 하고 있는 만화를 보고 있다는 거였고, 좋아서 애니메이션을 봤던 건 아니었지. 그림 그리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미술부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릴 정도는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없는 고교 생활을 보냈어.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NHK가 처음으로 만화─아직 아니메라는 말은 없었다고 생각하는데─를 한다고 해서 보게 된 거야. 처음부터 끌려서, 정말 그 정도로 매주가 기대된 TV 방송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그것 뿐이었지.


    오구로 그렇겠네요.


    이노우에 그래서, 딱 같은 시기에 「아니메쥬」가 창간되지.[각주:2] 창간호에 『코난』의 설정자료가 작게 게재됐었는데, 그걸 보고 「이건 대체 뭐지!?」라고 생각한 거지(웃음). TV에서 방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림체로 다양한 포즈와 표정이 그려져있었어. 그 때는 캐릭터 설정이라는 게 있는 건지조차도 몰랐으니까. 「이게 뭘까? 누가 그린 걸까」라고 생각했어. 그 후 「아니메쥬」의 창간호에서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을 알고,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급속히 흥미를 가져버렸지. 그 때, 「아니메쥬」가 없었다면 『코난』을 봤어도 재밌었다 정도에서 그쳤을 지도 몰라.

    그 후, 아마 창간 당시의 「아니메쥬」에서 『호루스』의 특집도 짜여진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코난』을 만들고 있는 사람과 같은 이름을 찾은 거야. 「에? 그 사람이 것도 만드는 거야?」하고. 게다가 거기 게재되어있는 『호루스』의 그림체에도 끌리게 되지. 「바위가 부숴지는 게 기분 좋다」「색칠이 강해서 좋다」라든지.


    오구로 조숙하시군요. 그런 시기에 벌써 그런 감상을(웃음).


    이노우에 응(웃음). 그렇게 오오츠카 야스오(大塚康生)씨 같은 사람들의 작업에 급속도로 심취하게 되는 거지.[각주:3] 이미, 애니메이터가 그리는 선이나 포름에 굉장히 끌렸던 거지.


    오구로 잠깐 기다려주세요. 지금, 그 『호루스』의 기사가 실려있는 「아니메쥬」를 찾아볼게요.


    (책장에서 당시의 「아니메쥬」를 꺼낸다)


    오구로 있네요. 이거죠.


    이노우에 그래, 이거야 이거. 그립네. 『호루스』도 창간호였구나. 그래, 이 특집을 보고 「파도의 포름이 멋있다」하는 걸 생각했어. 다른 애니메이션보다 내 취미에 맞다고 할까. (휘리릭「아니메쥬」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지금 보면, 본편 스틸컷이 아니라 선전용으로 그린 그림이 많네. 이 맘모스의 그림에 묘한 매력이 있어서(웃음). 이 다음에 아마 팬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법을 질문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아, 있다 있어. 이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그래, 창간호에 이런 기사가 있구나... 그리고, 창간호에... 아, 이거다.


    오구로 「아니두」의 소개 기사군요.[각주:4]


    이노우에 응. 여기에 「FILM 1/24」의 지면도 게재되어있지.[각주:5] 코타베 요이치(小田部羊一)씨의 그림이 실려있어서...[각주:6] 그 코타베씨의 그림에도 굉장히 끌렸어. 여기에 실려있는 페이지의 다음이 읽고 싶다고 생각했어. 「FILM 1/24」이라는 책에, 내가 알고 있는 게 빼곡히 차여져있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손에 넣고 싶었는데, 당시의 나로선 손에 넣을 방법이 없었어.

    그 후로 3, 4년 지나서, 상경하기 전에 아니메얼의 모리 카즈아키(毛利和昭)씨가 있는 곳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모리씨가 그 「FILM 1/24」을 가지고 있던 거야. 그 때는 「이거다」하고 방방 뛰면서 기뻐했어. 그 때의 기쁨으로 말할 거 같으면,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웃음). 그 때 복사 받은 그 기사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해놓고 가끔씩 읽어보고 그래.


    오구로 그렇군요(웃음).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이노우에 아니메에 관한 정보가 아직 적은 때였으니까, 그런 정보 하나 하나가 굉장히 기뻐서. 초창기 시절의 로망 앨범을 손에 넣었을 때도 굉장히 기뻤어. 최근에는 그 정도의 감동이 없어서(웃음).


    오구로 안타깝네요.


    이노우에 안타깝지... 뭐, 그런 시대인 건지도 모르지만.


    오구로 애니메이션의 정보에 관해서도, 풍부한 시대가 되었다는 거겠죠(웃음).


    이노우에 그렇지. 처음으로 『호루스』를 봤을 때는,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있어. TV에서 화면의 좌우를 잘라서 방영한 거였지만.


    오구로 『코난』에서 애니메이션에 눈 뜨고, 「아니메쥬」의 창간으로 아니메의 정보를 얻게 되고, 그 후에는 여러 애니메이션을 체크하게 되었나요?


    이노우에 아니, 애니메이션이라고 뭐든지 좋았던 건 아니고, 내가 반응하는 애니메이션은 그 시절부터 확실히 한정되어 있어서. 「아니메쥬」에서 오오츠카씨 같은 사람들이 관련했다는 기사를 기억한 다음, 관련된 스탭들의 작업을 이것저것 봐가는 거지. 그 시절엔 자주 토에이 장편을 여름 방학 시즌에 TV에서 방영해줬으니까. 그런 식으로 확인하면서, 점점 추종해야할 사람을 한정해간 거지. 「아, 이 사람은 『호루스』에 참가했지만, 내가 끌리는 부분에는 공헌하지 않았구나」라는 식으로.


    오구로 그렇게 해서 정한 추종해야할 사람은 누구였나요?


    이노우에 오오츠카씨,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씨, 코타베씨... 그 다음엔, 모리 야스지(森やすじ)씨. 그리고 코마츠바라 카즈오(小松原一男)씨랑... 극장판 『은하철도999』가 몇 년이더라?


    오구로 1979년의 여름이네요. 『코난』의 다음해에요.


    이노우에 그럼, 그 때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씨와 토모나카 카즈히데(友永和秀)씨도 알게 된 건가.[각주:7] 특히 토모나가씨에겐 많이 끌렸거든. 뭐니뭐니해도, 좋아하는 오오츠카씨랑 같이 작업을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시절에 공개된 『용의 아이 타로』는 코타베씨가 작업했다는 걸 의식하고 극장에 갔으니까...


    오구로 『용의 아이 타로』는 같은 79년 봄이에요. 지식의 진도가 빠르시네요. 굉장해요(웃음).


    이노우에 그렇게 열심히 보고, 「이 작품의 이 컷이 좋은 건, 분명 이 사람이 했기 때문일 거야」라고 상상한 거지. 많이 보다보면, 좋다고 생각한 작품에 공통된 스탭이 참가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지 않아? 그렇게 추리를 쌓아가면서, 「분명 이 사람과 이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리고 있겠지」하는 상상을.

    그러던 와중, 이미 고2가 끝날 때 쯤에는 「애니메이션 일을 하겠다」고 정하지 않았을까. 수험 공부를 시작할 시기였으니까, 주위에 반대를 받을 게 뻔했지만, 이미 안주에 없어서(웃음).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반드시 애니메이터로 성공할 거다」라는 맹목적인 자신 같은 게 있었거든.


    오구로 『칼리성』이 1979년말에 있는데, 그건 이노우에씨에게 영향을 주지 않은 건가요?


    이노우에 응. 그건 그렇게 큰 건 아니었어. 오오츠카씨 일행이 맡으면 훌륭한 작품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여전히 멋있다」라는 생각으로 봤거든(웃음). 오히려 텐션이 가라앉아버렸다고까지 생각했지(쓴웃음).


    오구로 확인 삼아 여쭤보지만, 그건 영화로서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서, 인 거죠?


    이노우에 아, 물론, 작화 얘기지. 『칼리성』보다 나의 애니메이터 혼을 자극한 건 오히려 극장판 『999』. 토모나가씨와 다른 사람들의 집착심이나 활기를 느꼈지. 그래서 『코난』과 『999』만으로도 계기로선 충분했어.


    오구로 그렇군요(웃음).


    이노우에 나는 카나다씨보다는, 굳이 고르자면 토모나가씨에게 끌렸지. 토에이 장편 시절의 사람들은 이미 구름 위의 존재 같은 감각이 있었으니까, 젊은 시절의 나는 말그대로 발디딤돌이 될만한 에네르기쉬한 사람으로서 토모나가씨에게 동경한 거였지. 굉장한 작화를 한다는 열의가 화면에서 뿜어져 나왔거든. 지금도 마음 속의 스승이라고 할까, 계속 추종하게 되는 사람으로서 남아있어.


    오구로 그렇군요. 그리해서 애니메이션의 지식을 넓힘과 동시에, 애니메이터로서의 스텝업도 시작한 거군요.


    이노우에 그 후, 전문학교에 가서부터지, 나카무라 타카시씨를 알게 된 건.[각주:8] 주위에서 『G라이탄』은 굉장해, 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 목표는 오오츠카씨라던지 토모나가씨 정도로 충분해서(웃음), 「그것보다 굉장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어」라는 식으로 주위를 깔보면서 눈길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 우연히 「대마신의 눈물」편을 보게 된 거야. 그 때의 놀라움은 「잠깐, 일단 토모나가씨는 뒷전으로 하고」라고 생각할 정도였지(웃음). 게다가 그건 한 편을 통째로 한 사람이 원화를 그리고 있잖아. 그 때는 이미 그게 얼마나 굉장한 건지, 그 의미를 알 때였으니까. 그게 딱 상경하기 직전이어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의가 더욱 깊어졌어.

    내가 아니메에 눈 뜬 이래 3, 4년간 접해본 적 없는 「아니메의 쾌감」 같은 게 거기에는 있던 거지. 그건 오오츠카씨 같은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작화의 쾌감이었어. 어쨌든 무척 흥분했던 기억이 나. 주위 사람들도 「봐라! 봐라!」하고 열심히 추천해줬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정도로 흥분한 건 아마, 나중에 이소 미츠오(磯光雄)군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오구로 확실히, 나카무라씨의 작화는 그 전까지 보지 못한 애니메이션이었죠. 그리고 상경한 뒤에는요?


    이노우에 들어갈 프로덕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어. 그래서 오프로랑 스튜디오 쥬니오, 둘 중 하나에 들어가려고 생각했었지. 그 두 회사가 원래는 같은 프로덕션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오구로 하테나 프로군요.[각주:9]


    이노우에 맞아. 인적 교류도 있을 테니, 토모나가씨와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얼빠진 생각을 하고 있었지. 오프로는 먼저 취직 활동을 한 동급생에게 이미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러면 쥬니오로 가자, 하고. 그래서 쥬니오에 크로키 노트를 가져갔지.

    당시에 나는 아니메적인 그림은 거의 안 그렸고, 크로키만 했었어. 크로키도 좋아했던 거지. 그건 아마 나카무라씨가 좋다는 마음과 어딘가에서 이어져있던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나중에 분석해보면 나카무라씨도 크로키나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데생 같은 것들의 좋은 부분을 애니메이션에 적절하게 가져온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거든. 물론, 당시에는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에는 크로키가 필요하구나, 하고 어딘가에서 느낀 걸지도 몰라. 아니메는 다양한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한 가지 색에 물들면 안 된다, 하고 의식했지. 그래서 당시부터 그렇게 얼굴은 그리지 않도록 했었고. 지금도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구로 그렇군요.


    이노우에 어쨌든, 쥬니오 사장에게 크로키 수첩을 보여줬더니, 무척 감심을 받은 것 같았어. 나는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감격하지는 않았고,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건방지지(웃음). 그 후 쥬니오에 들어가게 돼서, 동기 4명 정도와 함께 상경하게 된 거야. 참고로 그 4명은 카지시마 마사키(梶島正樹), 사토 유타카(佐藤豊), 미야케 카즈히코(三宅和彦)와, 훗날 카이요도에 들어가게 되는 보메(ボーメ).[각주:10]


    오구로 첫 원화는 무엇이었나요.


    이노우에 『스톱!! 히바리군!』. 그걸 세 작품 하고, 그 후 『이가노 카바마루』를 잠깐 돕고, 그러고 나서 『GU-GU간모』를 하게 되지.[각주:11]


    오구로 슬슬 활자로 남겨도 되지 않을까요? 캐릭터 디자인에 관한 얘기는.


    ●「animator interview 이노우에 토시유키 (2)」에 계속


    (01.03.29)


    원문




    1. 『미래소년 코난(未来少年コナン)』; 1978년 4월부터 동년 10월까지 방송. 제작/일본 애니메이션, 감독/미야자키 하야오,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오오츠카 야스오. 본문 주엥도 있듯이, NHK 첫 30분 연속 시리즈의 애니메이션이다. [본문으로]
    2. 「아니메쥬(アニメージュ)」; 도쿠마 쇼텐에서 발행하는 애니메이션 잡지. 1978년 6월에 일본 최초의 월간 애니메이션 전문지로서 창간되었다. [본문으로]
    3. 오오츠카 야스오(大塚康生); 토에이 동화 출발 시부터 활약한 애니메이터. 대표적으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루팡 3세[제1작]』등이 있다. 현재는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등에서 후진의 교육을 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아니두(アニドウ); 프로 애니메이터의 친목단체로서 발족된, 일본에서도 유수의 역사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팬 조직의 하나. [본문으로]
    5. 「FILM 1/24」; 아니두가 발행하는 기관지. 「아니메쥬」의 창간호에는 「FILM 1/24」의 『엄마 찾아 삼만리』 기사의 지면 일부가 작게 게재되어있다. [본문으로]
    6. 코타베 요이치(小田部羊一); 토에이 동화 출신의 애니메이터. 『알프스 소녀 하이디』『엄마 찾아 삼만리』등의 캐릭터 디자인・작화감독으로 알려짐. [본문으로]
    7.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토모나가 카즈히데(友永和秀) 둘 모두 화려한 액션 작화로 팬을 매료한 애니메이터. 카나다 요시노리의 대표작은 『대공마룡 가이밍』, 극장『환마대전』,『은하선풍 브라이거』의 오프닝 등. 현재는 하와이에서 CG 극장 작품의 제작에 참가. 토모나가 카즈히데의 대표작은 『마그네로보 가킹』,『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명탐정 홈즈』등. 최근작으로 『CYBER SIX』가 있다. [본문으로]
    8. 나카무라 타카시(なかむらたかし); 전회의 「animator interview」를 참고. [본문으로]
    9. 하테나 프로(ハテナプロ); 나가키 후사히로(永樹凡人), 코자이 타카오(香西隆男), 코이즈미 켄조(小泉謙三), 아즈마 히로시(我妻宏) 4명이 토에이 동화를 퇴사하고 1964년에 설립한 외주 스튜디오의 창시격 존재. 오프로덕션이나 스튜디오 쥬니오는 이곳을 루트로 하는 스튜디오. 그 때문에 이노우에 토시유키는 쥬니오와 토모나가 카즈히데가 소속하고 있던 오프로 등과 당시에도 교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 것이다. [본문으로]
    10. 카지시마 마사키(梶島正樹), 사토 유타카(佐藤豊), 미야케 카즈히코(三宅和彦), 보메(ボーメ); 카지시마 마사히코는 『천지무용!』시리즈의 원안・캐릭터 디자인으로 알려진 애니메이터. 사토 유타카는 『호빵맨』등에서 활약하는 연출가. 미야케 카즈히코는 『Bug는 허니』등에서 활약한 애니메이터. 또, 보메는 카이요도의 조형사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11. 『GU-GU간모(GU-GUガンモ)』; 1984년 3얼부터 다음 해 3월까지 방송된 토에이 동화 제작의 TV아니메. 원작은 호소노 후지히코의 동명 만화. 스튜디오 쥬니오, 스튜디오 자이언츠의 젊은 애니메이터가 실력을 겨루어 걸작, 이색작을 남겼다. 취재중에 화제가 된 키타쿠보 히로유키(北久保弘之)도 원화로 참가. 85년 봄에 공개된 동명 극장 작품은 이노우에 토시유키가 작화 감독을 맡고, 원화는 열띤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다수 참가하여 그림적으로 볼거리가 넘치는 필름이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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