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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들을 위한 작화 오타쿠 입문서
    애니메이터 소개 2013. 6. 17. 23:02

    한국에는 일본 못지 않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죠. 성우팬처럼요.
    그런데 왜 애니메이터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팬은 없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애니메이터인데, 성우만큼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관심을 보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작화붕괴라는 말로 애니메이터들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죠...

    일본은 오래 전부터 아니메쥬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애니메이터에 관한 취재를 실었고, 원화집, 인터뷰, 오디오 코멘터리, 토크 이벤트 등을 통해 비교적 애니메이터의 정보를 얻기 쉬운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작화 오타쿠의 역사는 깁니다. 미국에서도 Sakuga라는 명칭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팬층이 깊고, 작화 연구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애니메이터에 관한 관심은 커녕, 편견만 많고 작화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물론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이 그렇게 드러나기 쉬운 직업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에겐 많이 생소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사람들도 쉽게 작화를 접하고, 애니메이터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소개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작화 오타쿠가 도대체 무엇이고, 작화가 뭐길래 작화 오타쿠들이 열광을 하는지를 소개하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애니메이션의 제작 공정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의 기초가 되는 것은 콘티입니다.

    콘티란, 이런 식으로 화면의 대강적인 구도, 카메라의 움직임, 화면 전환의 타이밍 등을 표시해놓은 것으로, 이걸 토대로 애니메이터들이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콘티가 완성되면 원화가들은 작화 회의(作打ち)를 통해 담당할 컷을 배분 받습니다.

    컷을 배분 받고 본격적인 움직임을 그리기에 앞서, 원화가는 그 장면의 레이아웃을 먼저 그립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이나 오브젝트의 전체적인 위치와 배경 묘사(위 사진에는 없지만...)를 그립니다. 레이아웃을 먼저 그리는 이유는 완성된 화면을 미리 파악하기 쉽고, 원화를 하면서 배경도 동시에 작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레이아웃까지 완성이 되면 원화가가 본격적으로 작화를 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정지된 원화를 동화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원화에서 이미 움직임을 만듭니다.

    원화는 영어로 Key Animation 이라고 합니다. 정말 기막힌 작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말 그대로 원화는 움직임의 키가 되는 부분을 그리는 일입니다. "캐릭터가 앞으로 걷는다."라는 단순한 장면이라도 원화맨이 "이런 느낌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 그려넣습니다.

    동화는 원화의 보조 작업 같은 역할인데, 원화의 선을 트레이스(라이트 박스를 이용합니다.)해서 클린업 한 다음 원화 사이에 부족한 부분을 그려넣습니다. 그릴 때는 원화가가 지시한 타이밍에 최대한 따라서 그려야하죠. 즉, 동화는 움직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닙니다. "동화가 좋다"라는 말이 왜 틀린 말인지 이제 이해하시겠죠?

    그럼 "작화가 좋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정지 화면의 퀄리티를 보고 작화가 좋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작화 오타쿠들이 말하는 작화는 "움직임"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움직임에 열광하고 그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작화 오타쿠인 것이죠.

    왜 작화 오타쿠(길어서 다음 줄부터는 작덕으로 줄이겠습니다)는 움직임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그건 애니메이션의 본질이 "움직인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Animation이라는 말이 라틴어 anima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원래는 한 장의 그림일 뿐일 캐릭터를,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르게 보여줘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죠. 물론 캐릭터를 디자인에 잘 맞춰서 그리는 것도 애니메이터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은 맞습니다. 하지만 화려하게 움직이는 작화는 기본적인 자질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죠. 애니메이터의 절대수를 생각해볼 때, 작덕이 추구하는 좋은 움직임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움직임을 잘 그리는 애니메이터는 그만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작덕은 거기에 열광하는 거고, 또 그런 사람들이 그리는 작화를 좋은 작화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작덕은 어느 애니메이터가 어떤 컷을 그렸는지 어떻게 판단하는 걸까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중간에 "이 컷은 애니메이터 ○○이 그렸습니다!"라고 자막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물론 나오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애니메이터도 마찬가지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의 통일성을 위해 작화 감독을 수정을 하기 때문에 튀지는 않지만 말이죠. 그림 자체의 개성뿐만 아니라 움직임의 개성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작화 오타쿠(줄여서 작덕)들은 이 개성을 간파하고 각 애니메이터가 담당한 컷을 추측합니다.
    애니메이터의 파트 판별은 작덕의 추측이 주가 되는데, 인터뷰나 원화집에서 얻은 정보 등을 총동원해서 추측하기 때문에 고참 작덕들의 작화안(作画眼)은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가끔 추측이 틀린 걸로 밝혀지거나, 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이네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만... 애니메이터들도 놀랄 정도로 작덕들의 판별 능력은 무시할 것이 못 됩니다. 이렇게 추측한 작화 파트를 정리하기 위한 사이트가 작화 위키입니다.

    작화 위키 사이트

    작화 위키는 작덕들의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통이 됩니다. 다만 문제는...

    네... 일본어죠...... 저는 일어가 되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일어를 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더 쉽게 작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애니메이터 AMV, 또는 작화 MAD라고 불리는 영상입니다. 특정 애니메이터들이 담당한 작화를 모아서 영상으로 만든 겁니다. 작화를 잘 몰라도 MAD에서 본 장면을 애니메이션에서 다시 보거나, 비슷한 움직임을 보고 "어? 이거 ○○이 한 작화인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작화 덕후!

    이걸로 한국인을 위한 작화 입문서는 끝입니다. 하지만 입문만 해서는 깊이 알기가 어렵죠... 그래서 이제부터는 작화 영상과 함께 애니메이터에 대한 소개글을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넣어서 최대한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네요.



    어떠셨나요? 여기까지 읽어보니, 작화에 관심이 생기시나요?
    작화의 세계는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어려울 겁니다. 사실 일본에서도 작화 오타쿠는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애니메이터들이고, 그 분들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긴 글을 써가면서까지 애니메이터와 작화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은, 애니메이터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입니다.
    애니메이터는 돈이 안 된다느니, 밤까지 강제로 착취당한다느니 하는 말이 나도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구요. 심지어 "애니메이터는 공장 노동자"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애니메이터는 세간의 평가처럼 현시창 직업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애니메이터는 직업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실제로 돈을 왕창 벌어들일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건 즐겁죠. 그리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 받는 업계이기 때문에 일의 성취감도 높습니다. 좋은 작화를 그리면 동료들에게, 팬들에게 인정 받는 애니메이터가 될 수도 있구요. 어떤가요? 애니메이터가 굉장히 즐겁고 멋있는 직업 같지 않나요?

    이 글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도 2D 애니메이터가 나올 것이고, 그런 애니메이터 지망생들에게 좋은 지식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서입니다.
    저부터가 애니메이터 지망생이고, 어렸을 때 애니메이터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고생한 기억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저처럼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어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지망생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훌륭한 애니메이터가 될 수 있을까? 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몇 번이나 봐왔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고 일본어 실력이 쌓이면서 운 좋게 작화에 대한 지식을 얻었지만, 일본어를 못 하면 지식을 얻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고, 일어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다른 사람들도 마음껏 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솜씨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같은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서 한국에서도 풍부하게 작화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알찬 애니메이터 소개글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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