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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년대의 대충 작화사관
    작화 다이어리 2014. 11. 5. 11:10

    ※이 글은 「맛츠네의 아니메라든가 작화라든가」라는 하테나 블로그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링크는 여기를 클릭




    90년대 후반은 우츠노미야 사토루씨의 시대

    이소 미츠오씨가 됐든 오오히라씨가 됐든 나카무라 유타카씨가 됐든.

    카나다 액션이 진부하고, 우츠노미야씨의 방법론이 주류가 되었다.

    동시에 작화 가뭄 시대.

    에바가 히트한 영향은 컸다.


    00년대에 들어서

    초기의 이마이시씨의 등장은 역시 크다.


    카나다 복고.

    누마타 세이야씨가 그에 따른다.

    「최후의」카나다계였던 와타베 케이스케씨도

    지금은 이미 베테랑.

    와타베씨의 라인에서는 카바시마 요스케씨라던지

    카바시마씨도 물론 오오바리씨와의 관계가 크긴 하지만,

    출신은 Z5라는 것도 중요.


    그리고 가이킹LOD에서 그렌라간으로

    그렌라간 등은, 아마 90년대 후반에 같은 걸 보더라도

    젊은 사람도 포함해 누구나 「낡았다」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렌라간은 일종의 「새로움」과 함께 받아들여졌다.

    그야말로 신고전주의.


    한 편으로 쿄애니도, 전혀 다른 노선에서 힘을 키운다.

    캐릭터 수정의 철저함이라는 건 제쳐두더라도,

    역사 속에 묻혀질 뻔한 키가미[각주:1]씨의 샐비지에 성공한 업적은 크다.

    키가미씨의 츠메의 정교함은, 열심히 장수를 쌓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이쿠, 그 전에 마츠모토 노리오씨와 타케우치 테츠야씨.

    TV시리즈의 패자.

    패권 애니메이터.

    아니메 난조의 시대에 질 나쁜 아니메가 증식하는 속에서

    압도적인 질과 양으로 TV시리즈를 지탱했다.

    이 두 사람은 명백히 우츠노미야씨의 계보였다.

    우츠노미야씨의 계보는 우츠노미야씨 본인도 포함해,

    손이 느린 애니메이터가 많았던 것도 있었으므로

    경이적이었다.

    (반대로 카나다계 애니메이터는 일이 빠른 경향이 있었다.)


    2006년의 「되살아나는 하늘」쯤부터 타케우치 테츠야씨의 작업량이 줄고,

    대신 TV시리즈엔 WEB계가 등장하게 된다.

    AHO보이라는 뉴 웨이브 정리역할이 등장했다는 의미로서는

    「부탁해 마이멜로디」도 중요.


    가이킹LOD를 봤을 때는

    니시다 타츠조씨가 TV시리즈의 패권을 잡을 거라 여겼지만,

    꽤 금방 극장쪽으로 가버렸다.

    2006년이라  하면 「도라에몽 노비타의 공룡 2006」도 있다.

    마츠모토 노리오씨, 니시다 타츠조씨, 나츠메 신고씨, 마스다 히로스미씨

    TV시리즈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이

    작화 아니메를 만들었다는 인상이었다.

    2004년 3대 극장 아니메의

    「역시 AKIRA 때에 비해서 변한 게 없군」이라는 감상과는 정반대의

    흥분이 있었다.


    공룡 2006에는 그외에도, 00년대 들어 「피치피치핏치」라든가 「아카네 매니악스」라든가

    의미불명의 일만 해왔던 사사키 마사카츠씨의 작업이 굉장했다.

    TVCM을 계속해서 해왔던 것도 있어서, 어떤 의미로는

    실력을 넓게 인정받았다는 뜻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사사키 마사카츠씨는 그 후에도 「사키」로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각주:2]으로서

    재주목 받게 되니, 세상사 알다가도 모르는 것.


    그리고, 그런 2006년의 뒤에서 패권으로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

    다들 잘 아시는 타나카 히로노리씨.

    오오츠카 타카시씨의 사이트에 「엄청 잘 그리고 빨라!」

    「겸사겸사 그 다음 40컷도 해달라고 농담삼아 말했더니 진짜로 그려줬다」

    라는, 거짓말 같은 얘기가 쓰여진다.


    그러나, 넷상에서 주목받게 된 계기는

    「양배추」즉「새벽보다 유리색인」이었다.

    오오츠카씨의 사이트의 「타나카 히로노리」라는 인물의 기술이 발굴된 것도 이 때.

    그 때부터는 「프리큐어5」「셔플」「스쿨데이즈」등등

    눈에 띄는 일을 연발.

    눈 깜짝할 새에 타케우치 테츠야씨의 뒤를 잇는 TV아니메의 패자로 군림한다.


    그의 작화는 작화사의 흐름과 전혀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진다.

    료치모씨나 쿠츠나씨 같은 WEB계는

    마츠모토 노리오씨 넘어서는 우츠노미야씨의 흐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2007년 작화 스레에서 이마자키씨가

    그 존재를 밝힌 신성 애니메이터 사키야마 호쿠토 마저도

    「포스트 오오히라 신야」라는, 작화사적으로 알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또는 샤프트에서 두각을 드러낸 아베 겐이치로씨는

    「포스트 요시나리 요우」를 연상시키는 작화였다.


    우츠노미야 라인이라 하면 호리구치 유키코를 잊어서는 안 된다.

    키가미씨의 기술과 우츠노미야씨의 기술의 융합.

    그야말로 작화사적으로 올바른 슈퍼 애니메이터.

    「방금 돌아보는 거 오키우라 같지 않았어?」라든가.


    그에 더해, 타나카 히로노리씨의 작화는

    전혀 다른 우주에서 온 것 같은 충격이 있었다.

    작화 오타쿠계 애니메이터가

    호리구치 유키코씨에 대해서는 위대한 애니메이터를 들먹이며

    칭찬하는 것에 비해, 타나카씨에 대해서는 그와 정반대.


    사후적인 분석으로 그 원류를 키무라 케이치로씨,

    나아가서는 일본 아니메의 아버지 오오츠카 야스오씨를 찾아내는 것은 가능하나

    애초에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작화가

    21세기나 되어서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한 편, 그런 타나카 히로노리씨의 일도 2010년 후반 들어서는

    전성기에 비해 얌전해진다.

    「오오카미씨」의 3화가 터닝 포인트였는지도 모르겠다.


    「블리치」나 「프리큐어」등의 극장 작품의 일이 많아지고,

    지금까지의 패자들과 비슷하게, 점점 그 활약의 장소를

    극장 작품 쪽으로 옮겨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요즘도 이쪽 저쪽에서 이름을 보기는 하지만.


    슬슬 패권을 교대할 시기가 온 걸까.

    마땅히 생각나는 후계자는 아직 없다.

    타나카 히로노리씨의 등장도 완전히 시야 밖에서 찾아왔던 거니까

    어디서 어떤 슈퍼 애니메이터가 자라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아니메를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시다. 자자.






    1. 키가미 요시지(木上益治); 교토 애니메이션 이사. 『과연 사루토비(さすがの猿飛)』,『극장판 크레용 신짱(映画クレヨンしんちゃん)』등으로 알려진 애니메이터. [본문으로]
    2. 여기서 글쓴이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대변하자면, 사사키씨의 디자인은 작화사적으로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VIPER』,『프린세스 로드』때의 디자인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몸과 주름의 묘사. 얼굴에 약간의 모에 캐릭터로서의 기호를 첨가하고 디지털 촬영에 맞춰 디테일을 리파인한 것만으로 "새로운 디자인"으로서 인정받아 버린 것이다. 라이트층이 지배해버린 현 아니메 팬덤의 폐해를 알 수 있는 대목으로,『바케모노가타리』의 히트로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으로 자리매김한 와타나베 아키오씨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이쪽은 게다가 얼굴의 기호까지 90년대의 그것과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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