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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심리로 독해하는 에반게리온:Q
    연출돼지 2021. 1. 27. 16:45

     서론이 약간 길지도 모르니, 본문을 빨리 읽고 싶으신 분은 넘기셔도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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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글은 에바 고찰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널려있는 '에바의 미래예상' 같은 카테고리가 아닙니다. 그런 것에는 저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있어도 지식이 없기 때문에 못 씁니다. 지금부터 제가 쓰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Q> 본편 내에서 일어난 일들만을 힌트로 등장인물이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아가서는 "작가는 왜 이 캐릭터에게 이런 대사를 시키고, 행동시켰나"를 분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기에 쓴 내용이, 나중에 나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과는 앞뒤가 안 맞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Q』 의 여러 감상을 읽었을 때 "다들 미사토를 나쁜 사람 취급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물론 어떻게 느끼든 그건 자유기 때문에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게 '영화의 내용을 깊게 파악한 뒤에서 느낀 것인가'는 좀 궁금한데요. 만약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그런 감상으로 끝나버린다면 좀 아쉽다고 할까요. "한 번 봤으니까 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집중력이라는 게 그리 좋지는 않아서, 영화관에서 2시간 집중했다고 본인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놓치는 부분이 많이 있고, 놓치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가서 보면 기억에서 없어져있고 그러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하고, 또 그러면서 새로운 걸 찾아내는 걸 좋아하는 제가 여러분 대신 영화를 복습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전달하는 글을 써볼까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문입니다. 당연하지만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것을 전제로 쓴 것이니 이 이후부터는 스포일러를 잔뜩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싫으신 분은 이 이후로는 읽지 말아주세요.

     

    구출되자마자 분더에 끌려가 어리둥절 못하는 신지에게, 미사토가 냉정하게 "아무것도 하지마"라고 쏘아붙입니다. <:파>까지의 친절했던 미사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DSS초커라는 처형도구까지 목에 달아놓고 쓸데없는 짓 하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받습니다. 신지는 그런 미사토씨는 못 믿겠다면서 0호기에 탄 아야나미 같은 인물한테 따라가버립니다.

     

    이 미사토의 행동을 보고 불합리하다며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시청자는, 주인공은 '이카리 신지'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이 감정이입해야 하는 대상도 당연히 신지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영화는 시작부터 주욱 시청자와 신지가 거의 같은 정보격차를 짊어진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문을 모르겠는' 채로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시청자는 이카리 신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지를 향한 차가운 태도에 납득이 안 가고, "제멋대로"라고 느낍니다. 그런 감정을 유도하기 위해 영화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그렇지만 우리는 영화를 이미 한 번 봤고, 지금 세계가 어떤 상황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이어스가 걸린 시점으로 신지의 편을 드는 것은 그만두고, 좀 더 다양한 시점에서 이 장면을 보도록 해봅시다.

     

    여기서 정말로 풀어내고 싶은 것은 미사토의 마음이지만, 그걸 더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그 주변의 인물, 분더의 선원들에게 주목해봅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홍색 머리 여자애(키타카미 미도리). 신지가 분더의 갑판에 올라올 때 그를 노려보거나 혀를 차는 둥, 노골적으로 그에게 적대심 내지는 증오를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가 서드 임팩트의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지가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니어 서드 임팩트고, 서드 임팩트는 별개다"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기사 카오루의 대사로 직접 "모든 원인은 너야"라고 쐐기를 박은 걸로 보아, 적어도 이번 작, <:Q>라는 영화 내에서는 "서드 임팩트의 원인은 이카리 신지다"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걸 전제로 생각해봤으면 하는데요. 아마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추측되는 키타카미 미도리를 포함해서, 분더의 선원은 이카리 신지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신지는 지구 규모의 제노사이드 가해자인 셈이니까요. 절친의 여동생에게도 "절대 안 풀어요", "적당히 좀 하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한 편 미사토는 분더의 함장입니다. 최고 책임자입니다. 제일 높으신 분입니다. 좋은 상사는 부하들로 하여금 "이 사람을 따르고 싶다"라는 기분이 들게 해야합니다. 그런 높으신 분이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원수와도 필적하는 신지에게 친절한 말을 건넬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건 "함장"이라는 입장을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미사토 나름대로 부하들을 배려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미사토에겐 한 가지 더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건 신지에게 "진실을 말할까 말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토는 말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겠죠. 진실을 말해도 신지군에겐 아마 실감이 안 나는 얘기일 것이고, 그걸 말했다고 해서 몸도 기억도 14살인 신지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실제로도 카오루와 후유츠키가 신지에게 진실을 말해줬을 때도, 패닉에 빠져 현실도피하고, 결국에는 창으로 되돌리려하다가 자기한테 친절하게 대해준 카오루를 잃기까지 합니다. 그런 신지의 성격을 미사토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니, 될 수 있으면 신지군은 아무것도 모른채로, 마음의 짐을 떠안지 않은 채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미사토가 신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미사토의 최대의 친절이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미사토는 신지에게 '냉정'하게 대했을지는 모르나, 절대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너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마"라는 것은 빌레의 총의이고, "아야나미 레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거짓말이 아니죠. 실제로 신지가 구한(구했다고 생각했던) 아야나미는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미사토는 함장이라는 직책을 고려하면 신지에게 과하게 친절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선 "이카리 신지군"이라며 일일이 풀네임으로 부르면서 남남행세 했으면서, 신지가 도망가려고 할 때는 급해서 "신지군"이라는 옛날 호칭이 나와버리고, 기세 좋게 자폭스위치를 꺼내들었으면서 결국 누르지도 못하고. 인류가 위기에 빠질지도 모르는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중학생 남자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걸 두고 "미사토는 <:파>에서는 '가라 신지군!'이라며 부추겼으면서 이제와서 신지를 억압하려고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정말로 그럴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들을 끌어들이는 건 얘기가 다르죠. 누군가가 인생에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봐"라고 조언을 했더니, 갑자기 자기 집이나 친구들 집에 그 녀석이 똥을 마구 싸지르고 다닌다면, "내가 그렇게 충고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당연히 남의 집에 똥 싸는 놈이 잘못한 건데 조언한 사람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성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신지는 그걸 세계규모로 저질렀단 말이에요. 그러니 미사토는 적어도 신지군을 보고 "민폐다"라고 느끼고 있을 겁니다. 신지군이 자기 기분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건 괜찮은데, 그건 미사토도, 아스카도, 심지어는 레이에게도 해당되는 겁니다. 신지 한 사람의 기분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이 희생되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자기가 구한 아야나미가 아니면 관심 없는 신지와, 그런 아야나미(?)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긍정해주는 아스카.

    그런데, TV판 에반게리온은 사실 "이카리 신지의 기분이 제일 중요"합니다(다른 캐릭터의 감정 묘사가 없다는 얘기가 아님). 속히 말하는 '세카이계'라고 불리는 장르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따위 상관 없고, 자기가 제일이니까,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잔뜩 죽어도 "나한테는 상관 없는 일이야"라며 뚝 잡아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너한테는 상관 없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있지"라고 카오루가 말한 대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있고, 사회라는 것이 있기에 나라는 개체가 성립할 수 있는 건데, 어떻게 상관이 없을까. "세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라고는 하는데, 그것 때문에 정말로 세계가 어떻게 되어버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무슨 수로 책임을 질 건데? 라는, 이카리 신지, 또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가 이제까지 범해온(도외시 해온) 논리와 직면하려고 하는 것이 <:Q>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리의 "조금은 세상 물정을 알아라"라는 말은 그런 뜻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건, TV판, 적어도 <Air>까지의 신지는 스스로는 행동하지 않고 휘말리기만 하는 소년이었고, <진심을 그대에게>의 최후반의 대학살을 제외하면 정말로 선의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딱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파>부터의 신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야나미를 구하려고 행동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은 가해자입니다. 이 시점에서 옛날의 신지와 지금의 신지를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주변에 꽤 큰 파급을 주는 행위를 해버린 지금의 '신지의 마음'만에 주목해서 <:Q>라는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Q>의 신지는 웬일인지 이상한 방향으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 적극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보다 정보를 갖고 있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터인 미사토나 아스카에게 "고집쟁이"라며 불복하고, 카오루의 충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등 폭주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시야가 좁은데 쓸데없이 적극적이어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캐릭터는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데(<어비스>의 루크라던지), 의외로 여론은 신지에게 동정적인 것이 재밌는 현상이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14년이나 지난 덕에 아스카가 신지의 미숙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 그릇이 생긴 것일까요. 서로 자기의 불만을 해소하기 바빴던 14년 전과 다르게,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과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을 배웠다고 할까. 사회는 그런 거고, 자기라는 개체는 사회에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걸 '깨달음'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겠지만...

     

    이번 작의 아스카는 말투가 거칠 뿐, 주변 사람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사토의 명령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착실히 수행하고, 신지를 향한 감정을 잘 숨기고 있죠. 아스카의 타테마에가 꽤 완벽하기 때문에 그녀의 언동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그 본심을 해석하기 어려워집니다. 거기서 필요해지는 것이 마키나미 마리라는 캐릭터인 것이죠.

     

    <:파>에서 첫등장하여 신비로운 인상만을 남긴 마리입니다만, 물론 이번 작에서도 그녀의 정체나 백본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스카와의 대화로 미루어 둘의 관계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본심을 털어놓지 않는 아스카와 그걸 들여다본 듯 놀리는 마리의 대화를 힌트로 시청자는 아스카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마리라는 캐릭터는 아스카나 미사토 같이 본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어른들을 대변하기 위한 역할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봐도 지장이 없겠죠.

     

    그런 마리가 "그 얼굴을 보러 간 거 아니야?"라고 한다는 것은 그건 이미 아스카의 본심 말고는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아스카는 그런 자신의 감정은 숨기고 타테마에를 계속 연기하죠. 그런 아스카 시점에서 보면, 자기한테 불리한 사실에는 등을 돌리려하는 신지는 말그대로 애새끼로 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힘은 갖고 있기 때문에 포스 임팩트는 일으키지, 책임은 안 물려하지 손이 많이 가죠. 마지막의 아스카와 신지의 대화는 마치 말 안 들어먹는 아들과 일진 엄마를 보는 듯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정체는, 방금 전에도 쓴대로 '안티 신세기 에반게리온'인 것입니다. 저는 이걸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의 성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변화하고, 그러면서 그 전의 자신을 부정할 때도 있는 법이죠. 아스카도 미사토도, 물론 이번에 등장한 아야나미 레이조차 자기 나름대로 성장했습니다. 딱 한 명 이카리 신지를 제외하고요. 몸도 기억도 14살인채로 세계가 극변해버리고, 게다가 그 원인은 자기라 그러고, 실감도 구원의 손길도 없는 채 선택을 해야만하는 신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가엽습니다만, 그런 절망 속에서 자신을 긍정해주던 카오루도 죽어버렸으니, 그가 이 상황을 떨쳐내고 성장할 수 있을지... 그 진상은 <신 에바>가 공개되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겠죠.

     

     

     

     어떠셨나요.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니, 약간 신지를 디스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는데, 저도 굳이 말하자면 신지에게 동정하는 쪽이거든요. 애초에 중학생 남자가 인류 전체의 책임을 질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그런 점은 물론 이해한 채로, 그래도 이카리 신지 외의 인물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이 사리멸렬한 것이 절대 아니고, 신지에게만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다음에도 뭔가 쓸 예정이니 읽어주세요. 다음 번에는 <호빵맨>이나 <포켓몬>에 대한 글을 써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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